한국 전통 스포츠인 격구의 유래와 변천사

안녕하세요, '쉼표랑'의 민속 이야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국 전통 스포츠인 격구의 역사와 변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격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변화를 거쳐왔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럼, 격구의 역사와 변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격구의 유래, 변천사


격구란?

격구는 장시라는 채를 사용하여 나무 공을 구문에 넣는 경기로, 고려 말기 단오에 남성들이 주로 즐기던 놀이였습니다. 타구, 격구희, 농장희, 격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며, 민간에서는 공치기나 장치기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놀이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무예 연마의 한 방법이었으며, 말 위에서 행하는 마상격구와 지상에서 하는 지상격구로 나뉘었습니다. 특히 지상격구는 왕실과 궁중에서 왕족과 신하들이 즐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민간에서도 널리 퍼져 상층 계층의 놀이가 장치기라는 대중적인 놀이로 변모하였습니다.


격구의 유래와 역사

격구는 페르시아에서 처음 시작되어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파된 고대 스포츠입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기에 크게 유행하였고, 이것이 발해와 후삼국 시대으로 전파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격구에 대한 초기 기록은 한치운의 『해동역사』에 나타나며, 발해 사신이 일본에서 격구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고려사』 태조 2년에 격구장이 등장하는데, 이는 격구가 이미 후삼국 시대에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고려 왕들 중에서도 특히 의종이 격구에 능숙했으며, 무신정권 시기에는 무관들이 격구를 군사적 훈련과 오락으로 즐겼습니다. 고려 말기에는 단오절에 대규모 격구대회가 열리며 국가적인 오락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격구는 계속 성행하였으며, 태조는 뛰어난 격구술을 자랑했고, 세종은 격구를 무과시험 과목으로 채택하여 무예로서의 격구를 중시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궁궐에서 지상격구 형태로 격구가 이루어졌고, 미니 골프와 같은 형태도 존재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총포와 화포의 발달로 인해 말의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마상격구도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서 겨울철 놀이인 장치기로 변모하였습니다.


격구의 종류

격구는 사용하는 도구와 경기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먼저, 경기를 진행하는 방식에 따라 마상격구와 지상격구로 구분됩니다. 마상격구는 말을 타고 경기를 진행하는 방식이며, 지상격구는 말 없이 진행됩니다.

마상격구는 다시 경기장의 구조에 따라 단구문과 쌍구문으로 세분화됩니다. 단구문은 격구장의 한쪽 끝에만 구문이 설치되어, 선수들이 말을 타고 공을 차지해 그 구문을 통과시키는 방식입니다. 일본의 타구나 폴로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쌍구문은 양쪽 끝에 구문이 설치되어 서로 마주 보며 공을 빼앗아 상대방의 구문을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고려 시대에 성행한 격구 방식이 이에 해당하며, 쌍구문은 그 격렬함 때문에 부상의 위험이 높아 주의가 필요합니다.


마치며

이렇게 격구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천을 겪어왔습니다. 상층 유희적 성격에서 시작해 단오의 세시 풍속적 성격, 무예 연마적 성격, 민간의 겨울철 놀이로 변화해왔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이 전통 스포츠를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쉼표랑'의 민속 이야기 시간이었습니다.

댓글 쓰기

0 댓글